왜 대부분의 언어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적을까?
우리는 글을 쓸 때 자연스럽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씁니다. 키보드로 입력할 때도, 책을 읽을 때도, 손글씨를 쓸 때도 그렇죠. 이건 너무 당연해서 ‘왜?’라고 묻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 방향을 정했을까? 그리고 정말 모든 언어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써질까? 이 질문을 시작으로 파고들다 보니, 단순한 습관을 넘어선 문화, 신체 구조, 도구의 형태, 권력과 정보 구조까지 엮인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졌습니다.
왼쪽에서 오른쪽, 인간의 신체가 만든 방향
세상의 많은 문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씁니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한글, 일본어(가로쓰기), 중국어(현대형 가로쓰기) 등 대부분의 현대 문자가 그렇죠. 이게 정말 우연일까요? 사실 이 방향은 사람 손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지구 인구의 약 85~90%는 오른손잡이입니다. 종이에 글을 쓸 때 오른손잡이라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써야 자신이 쓴 글을 가리지 않고, 번지지 않게 쓸 수 있어요. 반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면 손바닥이 글자를 문지르며 덮게 되죠. 고대인들은 펜이 아니라 잉크, 점토, 깃털 펜 등 마르는 데 시간이 걸리는 도구로 글을 썼기 때문에, 글씨가 번지는 걸 피하는 게 매우 중요했어요.
즉,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방식은 단지 습관이 아니라, 인간의 신체 구조와 쓰기 도구에 적응한 실용적 선택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디자인입니다. 인간의 행동을 기준으로 정보를 정렬하는 시각적 방향 설계라고도 볼 수 있어요.
하지만 모든 언어가 그런 건 아니다
놀랍게도, 세상의 모든 언어가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을 쓰는 건 아닙니다. 아랍어, 페르시아어, 히브리어 등 중동 지역 언어는 지금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씁니다. 전통적인 중국어와 일본어는 세로쓰기와 위에서 아래,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이 기본이었죠.
이건 단순히 문화 차이로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랍어는 붓을 끌듯이 쓰는 방식에 최적화된 문자입니다. 오른손잡이 기준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던 거죠. 또한 종이 대신 파피루스나 양피지를 썼던 고대 사회에서는 말림 방향이나 글씨 흐름이 반대인 것이 오히려 더 합리적이었을 수도 있어요.
결국 글쓰기 방향은 자연의 법칙이 아니라, 문화적, 기술적, 도구적 환경에 따라 정해진 디자인이라는 겁니다. 정보의 방향성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시선에서 벗어나, 이것이 인간 조건과 기술 조건이 만든 상대적인 선택이라는 걸 알게 되면, 글자조차 하나의 시각 시스템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디자인으로서의 ‘쓰기 방향’ – 생각을 정렬하는 방식
여기서 흥미로운 건, 글쓰기 방향은 단지 물리적인 행위만이 아니라 정보 정렬과 사고방식과도 연결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을 읽고 쓰기 때문에, 시간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른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어요.
예를 들어, 타임라인, 인포그래픽, 영화 속 플래시백 장면에서도 과거는 왼쪽, 미래는 오른쪽으로 배치됩니다. 숫자 키패드, 계산기, 차트, 그래프 등도 대부분 그런 방향성을 따릅니다. 이건 단순히 눈의 습관이 아니라, 읽고 이해하고 판단하는 사고의 시각화라고 볼 수 있어요.
디자인은 항상 시선과 방향을 전제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글자의 배열 방식 하나에도 디자인된 사고가 깔려 있는 셈이죠. 우리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건, 단순한 문자 순서가 아니라 생각이 흐르는 방향, 정보가 설계되는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결론: 글쓰기 방향도 문화가 만든 시각 디자인이다
우리는 글을 쓰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글은 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흘러갑니다. 그게 너무 익숙해서 왜 그런가를 묻지 않았던 것뿐이죠. 하지만 이 하나의 방향성 속에는 인간의 신체, 도구, 기술, 문화, 감각, 철학이 모두 녹아 있습니다.
글쓰기 방향은 단지 글자 배열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어떻게 정보를 이해하고, 나누고, 기억하고, 전달할지를 결정짓는 시각적 구조입니다. 디자인은 이렇게,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규칙을 말없이 만들어냅니다.
앞으로 책을 읽거나 화면을 볼 때 문득 한 번 생각해보세요. 이 방향은 누가 만든 것일까? 그 질문 하나로, 세상을 보는 시선이 조금 더 입체적으로 바뀔지도 모릅니다.
Q&A: 쓰기 방향과 디자인에 대해 자주 묻는 질문
Q. 아랍어나 히브리어처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언어는 많나요?
많지는 않지만 존재합니다. 대표적으로 아랍어, 페르시아어, 히브리어가 있으며, 모두 중동 계열의 언어입니다.
Q. 글쓰기 방향이 UX나 제품 디자인에 영향을 주나요?
매우 큰 영향을 줍니다. UI 배치, 버튼 위치, 스크롤 방향, 콘텐츠 정렬 등에서 사용자 언어의 쓰기 방향이 고려되지 않으면 사용성이 떨어집니다.
Q. 한글도 세로쓰기였던 시절이 있었나요?
네. 조선시대 문서나 고전 문학은 세로쓰기였습니다. 현대에는 일본과 달리 거의 완전히 가로쓰기(왼→오)로 바뀌었어요.
Q.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 습관이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줄까요?
일부 연구에 따르면, 사고의 흐름이나 시간 개념(과거-미래의 배치 등)에서도 언어 방향성이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Q. 미래에는 글쓰기 방향이 바뀔 가능성도 있나요?
현실적으로는 어렵습니다. 기술, 콘텐츠 구조, 교육 시스템이 모두 이 방향을 전제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VR, 음성 입력처럼 방향성이 없는 인터페이스가 늘어나면 가능성은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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