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휴지 심지는 항상 회색일까? - 보이지 않는 디자인의 선택

휴지를 다 쓰고 나면 남는 그 동그란 종이 심지.
한 번쯤은 이렇게 궁금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왜 휴지 심지는 늘 회색일까?"

요즘은 포장도 예쁘고 향도 좋은 프리미엄 휴지도 많지만, 정작 그 안을 들여다보면 브랜드에 상관없이 심지는 늘 회색입니다. 하얀색이면 더 깔끔하고 고급스러워 보일 텐데 말이죠.

사실, 이건 단순한 색상의 문제가 아닙니다.
제조 원가, 환경 보호, 사용자 경험까지 고려한 ‘디자인 결정’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1. 회색 심지는 재활용 종이의 결과물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바로 ‘재활용’입니다.
휴지 심지는 거의 대부분 100% 재활용 종이로 만들어집니다.

재활용 종이는 다양한 색상의 종이가 섞여 있어 완전히 하얗게 만드는 것이 어렵고, 굳이 표백 처리까지 하려면 환경에도 해롭고 비용도 더 들어갑니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회색빛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친환경적이고 경제적인 선택인 셈이죠.
회색은 ‘싸 보이는 색’이 아니라, 지속 가능성을 선택한 색입니다.

‘그래도 하얗게 만들면 더 고급스럽지 않을까?’라는 생각, 누구나 할 수 있죠.
하지만 그 과정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표백을 위해 사용되는 염소계 화학물질은 환경에 악영향을 줄 수 있고,
표면 코팅이나 매끄러운 질감 처리를 하려면 추가 공정과 자원이 들어갑니다.

결국 흰색 심지는 단가도 높고, 지속 가능성도 낮은 선택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대부분의 브랜드는 ‘겉모습’보다 환경과 효율성을 우선하는 방향을 선택합니다.

디자인은 ‘보이는 것’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사용자가 어떻게 느끼고, 언제 무엇을 알아차리는가도 중요한 요소죠.

휴지를 사용할 때, 남은 양이 거의 없을 때쯤 회색 심지가 눈에 띄며 '다 써간다'는 신호를 줍니다.
하얀 심지였다면 휴지와 색이 섞여 잘 보이지 않았겠죠.

즉, 회색 심지는 시각적인 대비를 통해 사용자 경험을 향상시키는 UX 설계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이건 단순히 저렴한 재료를 선택한 게 아니라, 의미 있는 디자인 의사결정입니다.

브랜드 경쟁은 보통 ‘첫인상’에서 이루어집니다.
부드러움, 향, 포장 디자인 등 사용 전·중의 경험에 많은 투자가 이뤄지죠.

반면 심지는 휴지를 다 쓰고 난 뒤에야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즉, 소비자 경험의 ‘끝자락’에서 잠깐 등장하는 후방 디자인이죠.

그래서 브랜드는 굳이 여기에 비용을 들이지 않습니다.
기능성, 비용 절감, 친환경성만 충족된다면, 회색 심지로도 충분한 역할을 한다고 판단하는 것이죠.

Q. 왜 대부분의 심지는 회색인가요?
재활용 종이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색을 따로 표백하거나 염색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회색이 됩니다.

Q. 흰색 심지는 만들 수 없나요?
기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표백제 사용, 추가 공정 등이 필요해 비용과 환경 부담이 큽니다.

Q. 브랜드 로고를 심지에 넣으면 더 고급스러워 보이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브랜드는 심지보다 포장이나 제품 자체에 집중합니다. 심지는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기능성을 유지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우리는 흔히 디자인을 예쁘고 화려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짜 디자인은 때때로 보이지 않는 불편을 줄이고, 낭비를 줄이며, 경험을 향상시키는 것에 있습니다.

휴지 심지가 회색인 이유는 단순히 ‘싼 종이라서’가 아닙니다.
환경을 위한 결정, 원가 절감, 시각적 인지까지 고려한 디자인적 선택인 것이죠.

다음에 휴지를 다 쓰고 남은 회색 심지를 보게 된다면, 그 안에 담긴 작지만 똑똑한 디자인 철학을 떠올려보세요.